11월, 12월에 본 다섯 편의 영화 쓰고 생각났는데 11월에 <로스트 인 더스트>도 봤었다;; 내 아이디로 예매한게 아니라서 깜빡.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1월의 아트하우스 Day를 이용해서 봤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나니 <죽여주는 여자>, <로스트 인 더스트>,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세 영화가 한 궤도에 있단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사람들. 세세한 이야기는 달라도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유발한 근본적 원인이 같기 때문에. 요즘 이런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게 전세계적으로 어렵구나 싶기도 해서 이 영화들 을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만족도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4.5) > 죽여주는 여자(3.5) > 로스트 인 더스트(3.0). 가장 현실감 드는 건 아무래도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한 <죽여주는 여자>였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이야기하는 시혜적 복지주의와 관료주의의 문제점이 우리나라라고 없는 건 아니니까. 예측가능한 결말이라도 끝에 다다라서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켄 로치의 묵직한 질문 덕이다. 나는 다니엘이 될 수도 있고, 케이티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미 또 다른 다니엘일 수도 있겠지.

 이 영화를 보면서 예전의 '무상급식' 논란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무상급식'이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 세금으로 급식비를 충당하는 것인데 '무상'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서 "왜 공짜로 밥을 먹이느냐"는 반발을 일으켰지. 적확하게는 세금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급식을 제공하여 급식비를 내기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급식을 지원해주겠다는 거였는데. 그 단어에서조차 '누군가에게 베풀어준다는' 시혜적 복지주의가 엿보인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나라에서 보장한다는게 그렇게 반발을 살만한 일이었는지.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해지는 영화였다. 잘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보긴 힘들 것 같은.



신비한 동물 사전 

 오프닝에서 해리포터 OST가 나올 때 제일 설렜다. 롤링도 밑천 다 떨어진 것 같고 연출은 더 하고. 영화 내 대부분의 장치들이 다 뜬금포 아니면 이해 안 가는 설정이라 들떴던 마음을 지구 내핵까지 가라앉히고 왔다.

미씽 : 사라진 여자 

 재밌게 본 편인데 과장되고 촌스러운 연출을 쳐내고 과거 가해자-피해자 관계에 있던 여성들이 피해자-또 다른 피해자의 관계로 넘어가면서 형성된 공감대를 더 조명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지선이 마지막에 한매를 찾을 수 있었고, 또 한매가 지선에게 아이를 돌려주는 것에는 두 사람이 가부장적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로서의 공감과 연민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바다씬, 환상씬 다 넘 구렸어;; 

두 남자 

 사실 이런 류의,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미성년~성년 초반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신인감독 특유의 거친, 덜 다듬어진 연출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두 남자는 전혀…. 어설픈데다 한국 영화의 나쁜 점은 죄다 답습하고 있다. 소셜포비아와 파수꾼이 얼마나 잘 만든 것인지 실감하고 왔다. 가뜩이나 소재 자체가 파수꾼이나 소셜포비아에 비해 거리감이 있는데다, 무게중심조차 잘못 잡고 있으니 관객의 흡입력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이게 두 남자냐? 세 남자지. 그리고 중간중간 편집점이 이상해서 멈칫했다. 대체 뭘 위해 이 영화를 찍은거냐?

라라랜드 

 볼 때는 그렇게 좋진 않았는데 OST는 자꾸 생각나서 계속 돌려듣고 있다. 영화는 위플래시와 버드맨을 섞어놓은 느낌. 영화는 다시 안 볼 것 같지만 OST는 앞으로도 꾸준히 들을 듯.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블랙&크롬) 

 매드 맥스에 대한 리뷰는 따로(http://gandhara.tistory.com/193). 컬러버전에 비해 서늘하고 강렬하며 묵직하다. 물이 쏟아지던 씬이나, 시타델에서 키우던 풀 같은 씬은 컬러가 더 낫긴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흑백 버전이 압도적이라서 왜 감독이 흑백을 포기 못했는지 알 것 같다. 근데 상영 스케쥴 너무 거지같은 것ㅠㅠ.... 마스터 몰아주지 말고 매드맥스도 좀 열어조라ㅜ0ㅜ



죽여주는 여자 

 이 영화는 시종일관 남자 캐릭터들을 비판한다. 한국남자들은 돈 들여 유학 보내면 애나 싸질러놓고 책임도 안 지며, 흰머리 할배가 되어도 성욕의 숙주이고, 자기 필요하다고 남 생각 안 하고 속이려하고, 죽는 것도 저 혼자 못해서 남의 손 빌리고, mtf 면전에 대고 비꼬면서도 걔랑 자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등등등 소위 한남만 까는 것도 아니고 양공주 끼고 살다가 죽어라 패대는 주한미군도 비판의 대상이다. 여기서 어느정도 비중 있는데 부정적이지 않은 남캐는 코피노 꼬마와 어릴 적 버림받아 미국에 입양된 혼혈미군뿐이다. 즉, 처음에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야기한 피해자들이다.

 극 중에서 간호사가 '대놓고 공부하러 필리핀까지 가서 애나 싸지르고 한국 남자들이 다 그렇지'라고 직접 얘기해서 좀 놀랐는데, 이 영화는 남자만 까는 것 같으면서도 여성혐오적 시선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아쉬움이 있다. 소영에게 손님을 뺏기고 질투하는 또 다른 박카스 아줌마나, 중풍 맞은 세비로송을 방치하면서 소영을 적대하는 며느리에게 비난의 초점이 가게 한다든지. 전자는 전형적인 여적여의 시선이고, 후자는 사실 진짜 까여야할 친아들을 두고 며느리를 집중 비난한다는 점에서 미소지니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고 할까. 진 시종일관 신랄하게 까는데 속시원한게 아니라 찜찜했다. 내 미래 역시 소영처럼 처참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유주얼 서스펙트 

 명작이 명작인 이유. 스포 없이 봤어도 어느정도 짐작했겠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는 반전이 중요한게 아니다. '카이저 소제'를 중심으로 엮어나가는 플롯과 탁월한 연출이지. 요즘 CGV에서 좋은 영화 재개봉 많이 해줘서 좋다. 이건 그중에서도 군계일학.

파이트 클럽 

 99년작인데 지금 봐도 세련된 연출이다. 재밌었는데 한 10분 정도만 짧았으면 더 집중했을 것 같다. 어쨌든 고도화된 사회에서 규격에 맞추어 사는게 정말 행복하냐고 비꼬는 감독의 통찰력은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중간중간 테일러처럼 짧게 다른 것을 삽입한 위트까지도! 근데 요거 말고 다른 포스터 넘나 스포인 것ㅋㅋㅋ 나도 포토티켓은 그걸로 했는데 내가 다 보고 나서야 이게 영화의 핵심이나 싶었던거지, 이 포스터부터 봤으면 넘나 당황했을 것.

닥터 스트레인지 

 31일까지인 3D 예매권이 있어서 보긴 봤는데 역시 마블 영화는 나랑 안 맞아. 영상은 화려하지만 그 영상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는 루시나 인셉션의 답습에 불과했고, 인물의 매력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도구화된 캐릭터만 남는다. 생텀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해놓았는데 막상 파괴되어도 별 문제 없어보이고, 빌런인 케실리우스도 어처구니 없이 사라지니 대체 이 영화는 뭐랑 싸우려던거지 싶어진다. 그렇다고 개그가 재밌는 것도 아니고, 이 배우들로, 이 예산으로 이런 낭비를 하다니.




칠드런 오브 맨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 인류에게 '생명'이 '왜' 소중한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전세계 최연소자가 사망하자 안면도 없는 사람들조차 비탄에 빠지는데 동시에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듯, 불법 이민자들을 격리하고 사살한다. 같은 생명의 무게를 달리 측정하는 아이러니가 인상적. 그래서 롱테이크 씬에서 모두가 아이를 홀린 듯 바라볼 때의 무게감은 더욱 커진다. 

 번역은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극 중 남캐가 "We have no baby!"를 외치는데도 '여자가 불임'이라고 번역한다. 심지어 영화 소개 첫문장은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임신기능을 상실한 종말의 시대!'. 영화에서는 여자의 불임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인류의 멸망이 다가온 디스토피아, 인류의 쇠퇴에 가까운데, 그걸 굳이 또 여자의 불임이라고 콕 찝으니까 이것이 한국패치인가 싶어서 너무나도 불쾌했다. 물론 여자가 임신하지 못하는게 더 뚜렷해보이긴 하지만, 굳이 여자의 불임이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잖아. 원 대사 자체도 '우리'가 불임인건데. 영화는 괜찮았는데 번역이 너무 불쾌했다.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09년 뉴욕에서 강에 불시착해서 전원 생존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극적으로 포장하기 좋은 사건인데 다분히 정적으로 표현해서 지루하게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목적한 최우선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정적인 연출을 택한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연초의 스포트라이트의 연출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전원 생존이라는 대단한 결과를 이끌어낸 캡틴 설리에게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계속 묻는다. 네가 한 선택이 확실해? 네가 틀렸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왜 그런 선택을 했어? 네 선택이 승객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단 걸 알았어? 설리도 자문한다. 정말 그게 옳았을까? 영화 내에서 해답까지 제시한다. '사람'이라고. 사람이라서 그런 선택을 했고, 사람을 태웠기 때문에 그렇게 했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했다고. 이 모든 선택의 최우선 가치는 '사람'이었다고.

 비행기에 좋은 기억이 없는 뉴욕 사람들이 이 사건, 그리고 이 영화로 많은 위로를 받았겠다 싶었다. 중간에 생존자 수 확인하는데 눈물이 왈칵 나왔다. 155명 전원생존. 아마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관객들 대부분은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까... 탈출하세요! 14년 4월에 우리에게 필요했던 그 한마디까지. 기체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에야 탈출하는 설리, 155명 전원 생존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설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만약 이 영화가 실화를 배경을 하지 않았다면 세월호 저격 영화라고 했을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세월호와 반대되는 모습들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가라앉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개인과 사고가 터졌을 때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럽고, 그런 시스템도 개인도 없는 우리가 억울하고 서러워서 정말 많이 울었다.

 3년 전에 나왔다면 후반부에 미국식 영웅주의가 불편했다고 깠겠지만, 기적을 이뤄낸 사람이 영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설리 본인도 할 일을 했을 뿐, 영웅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참혹한 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지 잘 알지. 스포트라이트나 아이 인 더 스카이가 더 매끈하게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건 이 영화였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처음엔 기괴한 분위기라 좋았는데, 갈수록 밍밍해져서 아쉽다. 그래도 그동안 팀버튼이 쏟아낸 망작에 비하면 훨씬 낫다. 각각 캐릭터들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데다, 능력이나 설정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메두사 능력으로 압살해버릴텐데 왜 다른 애들이 몸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물론 그렇게 되면 너무 밸붕이겠지만;; 루트 벗어날 때 잊혀져버린 빅터에게 애도를 표한다. 정말 끝까지 빅터 언급이 한 번도 안 나올 줄은….. 이렇게 까지만 막상 볼 땐 재밌게 잘 봤다ㅋㅋㅋ 보다가 문득 빅터 생각이 나서 좀 슬퍼졌을 뿐, 그냥 별 생각 없이 보기에 좋았다.


 지난 달에 바빠서 포스팅을 하나도 못했지만 미루면 영화 본 것도 잊어버리기에;; 일단 9월에 본 거 쓰고, 10월에 봤던 것도 마저 써야지.




터널 

 여름에 가족들끼리 보기에 무난했던 영화. 극한 생존기라기보단 주인공이 죽을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던 마션에 가까운 코믹극. 후반부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지만(일단 이 나라가 그 상황에서 피해자를 무사히 구출해낼리 없다는 부정적인 확신;;) 이런 영화에서까지 현실반영해서 이정수가 죽었으면 넘나 피폐했을 것 같다. 극사실주의 영화를 기대하고 간 것이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만족했다.

고스트 버스터즈 

 스파이도 그랬는데, 이 감독 개그 센스는 나랑 맞는 듯 안 맞는 듯 묘하다. 그런데 홀츠먼은 일억이천 내 취향ㅋㅋㅋ 유쾌한 괴짜 과학자 그대로ㅋㅋ 홀츠먼 나오는 씬은 다 웃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로 포지셔닝된 듯 하지만, 사실 온전한 페미니즘 영화라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부족해보인다. 크리스 헴스워드를 금발 백치 비서로 갖다놓고 메인 캐릭터들을 여자가 맡았다는 점에서 (퀄리티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차이나 타운이 생각나기도 하고. 나는 재밌었는데 호불호 갈릴 개그라 선뜻 추천은 못하겠더라. 스파이보다는 고스터 버스터즈가 더 내 취향.

머니몬스터 

 빅쇼트나 마진콜을 기대하고 갔으나…. 이 영화가 월스트리트의 경제 범죄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포장하는 티비쇼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목적으로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문제는 다른 증거들로는 원인을 충분히 규명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양심고백으로 원인이 밝혀진다는데에 있다. 그 사람이 굳이 양심고백을 해야할 이유따윈 없었음에도. 그렇기 때문에 맥빠지는 느낌이 들 수밖에. 게다가 리와 패티가 다시 같이 웃으며 일하는 것으로 냄으로써 월스트리트와 티비쇼에 대한 비판도 희미해진다. 차라리 촬영감독의 인터뷰로 끝냈으면 티비쇼에 대한 비판으로 끝맺음한다고나 하지. 대체 왜 그런 엔딩을 냈는지 모를 일이다.

밀정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모티브가 된 황옥처럼 일본편일까 의열단편일까 아리송한 느낌으로 그려졌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확고한 의열단편으로 그려져서 식었다. 일본쪽에서도 우리편이라 하고 김원봉도 내 사람이라 하는, 그렇지만 서로의 밀정이기도 한 그런 애매모호한 캐릭터일 줄 알았는데 친일파로 눈가림하는 독립인사였다. 일본경찰도 의열단도 이정출이 상대에게 정보 유출한 밀정이라 의심하면서 긴장감 키워갈 줄 알았는데 김우진이 너무나 당연하게 같은 편이라 여겨서 당황했다. 리어카씬에서 오열하는 이정출도 당황스럽고. 황옥이라는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을 그릴때, 어디라고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조회령 서사가 너무 잘려나가서 의열단 내부의 밀정을 처단하는데 긴장감도 없고, 비장함도 없다. 이병헌씬을 잘라내서 조회령에게 주었어야지.

 기대 많이 했는데 좀 밍밍한 느낌?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클라이막스가 여기다! 싶은게 아니라 클라이막스까지 얼마 안 남았겠네 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까가 클라이막스였던 느낌적인 느낌. 만듦새가 나쁜 건 아닌데 영 밍밍하고 아쉽다. 암살만큼은 아니어도 극적인 부분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그렇더라. 공유 빼고는 연기는 다 좋았다. 특히 엄태구 보고 깜짝 놀랐다. 송강호야 늘 기대만큼 잘했는데, 엄태구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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