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스크린

레버넌트 / 빅쇼트 / 캐롤 / 대니쉬 걸 / 주토피아

Milkrole 2016. 2. 27. 01:43



레버넌트 


 이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 자체보다 레오가 드디어 오스카를 손에 쥘 것인가 여부가 더 화제가 되는 것 같다. 드디어 오스카 레이스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개인적으로 레오의 인생연기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영화로 수상하면 좀 아쉬울 듯. 월가의 늑대를 보고 나서 드디어 레오가 오스카를 거머쥐나 했더니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월가의 늑대가 올해 나왔더라면 레오의 수상이 확실했을텐데. 레버넌트에서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레오의 100%는 아니라. 여러모로 아쉽다.


 전체적으로 쫄리면서 지루하고, 지루하면서 쫄렸다. 최근에 본 영화 중 시카리오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시카리오보다 덜 쫄리고, 더 지루하고, 더 날것의 느낌이 났다. 시카리오가 사회화된 무리의 잔혹함이라면 레버넌트는 말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잔혹함. 그래서 부분부분 영화가 아니라 다큐를 보는 느낌도 들고. 피도 많이 나오고 신체훼손이 많아서 15세라기엔 좀 강하지 않았나 싶었다. 15세 준 이유가 이해 안 가는 건 아닌데 18세여도 납득했을 수위랄까. 


 이 감독 전작이었던 버드맨에서 꿈/환상을 세련되게 현실에 녹여내서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레버넌트에서 나오는 꿈/환상의 연출은 정말 촌스러워서 실망했다. 난!!!! 와이어를!!!!달고!!!!있다!!!!!를 외치는 장면이라니. 버드맨의 연출이 훨씬 세련됐다. 자연 관경을 풀샷으로 많이 잡으면서 자연의 웅장함을 강조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너무 지루하게 느껴진다. 평일 조조치고 꽤 많은 인원이 영화관에 들어왔는데 그중에서 상당수가 중도 퇴장하는게 너무나 잘 이해되는 것...난 굳이 따지자면 좋았다 쪽이지만 그럼에도 중간에 정말 지루했으니까ㅠㅠ  스케일 큰 자연 영화인 건 알겠는데 글래스의 감정선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아들이 살해당해서 슬프니 아들의 원수에게 복수를 하겠다. 이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다고 할까? 그러니 슬프게도 결국 남는 것은 레오와 촬영 감독의 오스카 수상 여부밖에 없는 것이다.



빅쇼트 


 수줍게 밝히자면 나는 경제학 전공이다. 학부시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정통으로 처맞은 까닭에 온갖 수업에서 실시간으로+후대처까지 다뤘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이 영화를 기다렸다. 궁금하잖아. 수업 시간에 배운 거랑 영화로 보는 거랑은 또 다르니까. 아무래도 영상이다보니 글자의 피상적 상상력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영화는 방만한 금융계의 운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았는지, 화려해보이는 금융 상품이 실상 얼마나 썩어있는지, 하나하나 파헤지면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아는 사람으로선 굉장히 숨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실, 미국만의 문제도 아닌게 한국의 부동산 버블도 상당하니까. 지속적으로 부동산 버블에 대한 경고가 들려오는 와중에도 정부는 여전히 대출받아 집을 사라고 한다. 아마 또 내 세대가 버블 타격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ㅡㅡ;;; 이래저래 오싹한 내용의 영화다.


 연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뉴스와 등장인물들이 중간중간 제4의 벽을 깨고 끊임없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면서 이것이 픽션이 아닌 '현실'임을 역설한다. 등장하는 전문용어의 해설은 까메오의 입을 빌려서 관객의 관심을 환기하는 동시에 '도박', '사기'에 비유하면서 금융상품의 비도덕성과 거품을 강조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벤의 한마디. '미국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걸었어. 우리가 옳으면 사람들은 집도, 직장도, 은퇴자금도 잃어.' 영화의 주연은 마이클, 마크, 자레드, 그리고 벤이 아닌 제이미와 찰리라 생각했는데 저 한 마디로 벤 Top4 인정. 


 아쉬운 건 마케팅의 방향. 포스터는 유쾌한 한탕 사기극 같이 뽑았는데 실상은 잔혹할 정도의 현실이니까. 월스트리트를 물 먹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금융계의 시스템적 한계가 주제인데. 아무튼 이제 물에 투자합시다.. 마이클 버리의 모델이 현재 물에만 투자하고 있다고 하니...



캐롤 


 평이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나는 그냥 그랬다. 일단 캐롤과 테헤즈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이해가 안 가서.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나 몰래 연애하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러려니 하지만, 일단 '왜 그랬는지'가 이해가 안 되니 감정이입이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캐롤이 테헤즈에게 하는 게 중년의 아저씨가 갓 미자 딱지 뗀 여자애한테 작업 거는 거나 비슷해보여서 영 불쾌했다. 캐롤이 남자였다면 똥차도 이런 똥차가 없다며 온갖 욕을 다 먹고 있었을 것이다. 이혼 소송 중에 썸타는 사람 불러놓고 남편이랑 싸우고선 썸녀한테 화풀이. 사정이 있었다곤 해도 자고 일어난 후에 편지 하나 남기고 떠나고, 뒷처리는 (자기의) 전애인에게 맡긴다. 여-여 퀴어 영화라 그나마 캐롤 캐릭터가 옹호받고 있는 듯.


 '50년대의 여-여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평이 좀 후해지긴 한다. 많은 퀴어 영화들이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에 집중한다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 이후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이어서 인상적인 엔딩이긴 했다. 영상도 예쁘고 연출 면에서 디테일에 집착한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그저 예쁜 영상과 음악만 남는다. 캐롤이 남편과 변호사들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며, 더는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기 싫다고 울먹이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 주제일테지만, 이런 정체성을 다룬 작품에서는 클리셰인지라 무감하다. 클리셰라도 잘 다루면 괜히 클리셰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을테지만 나에게 캐롤은 그정도는 아니었다. 어쨌건 영상은 예뻤고, 케이트 블란쳇은 멋있었고, 루니 마라는 사랑스러웠다.



대니쉬 걸 


 캐롤보다는 차라리 대니쉬 걸이 내 취향에 가깝긴 했는데, 릴리 엘베가 너무 나쁘게 나와서 릴리가 아닌 게르다에 이입하게 된다. 아, 물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서 생물학적 성性을 바꾼 릴리의 용기에는 찬사를 보낸다. 요즘 같이 트랜스젠더가 종종 보이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성전환이야 더 말할 게 있을까. 아무튼 이 영화는 릴리 엘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릴리가 아닌 게르다가 더 공감가는 캐릭터다.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불안한 느낌으로 섬세했지만, 그의 릴리는 나쁜 년이었슴다.. 게르다라고 처음부터 릴리를 인정하고 릴리를 릴리로서 사랑했겠는가. 릴리가 아닌 아이나의 아내였기에, 아이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이나가 real me라고 주장하는 릴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준 거지. 평생을 함께하자던 '남편'이 자기는 '여자'라는데 결국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도 모자라, 뒷바라지까지 해줬는데 릴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며 짜증을 내다가, 정작 힘든 일을 앞두고서는 다시 게르다에게 기댄다. 릴리의 말대로,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정도. 중심소재는 릴리의 일생이겠지만, 게르다의 헌신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아이나가 처음 스타킹을 신고 발레복을 몸에 대면서 다리를 내려다보는 시선 연출. 아이나의 불안정함과 설렘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나중에 게르다가 이것 때문에 자책하겠구나 싶은 느낌이. 그런 면에서는 좀 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에드메인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였다. 




주토피아 


 이 영화의 키워드는 '차별'과 '편견'. 얼핏 보면 차별은 나빠요! 를 외치는 것 같은데 실상 뜯어보면 그리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몸집이 작은 초식동물인 토끼가 이례적으로 경찰학교 최우수 졸업생으로 와서 맡은 직무란 주차단속. 1차적으로 이것은 주인공인 주디가 토끼라서 '차별'받는 일이 맞다. 그렇지만, 이 일의 저변에는 '주차단속은 무시할만한 일'이라는 '편견'이 깔려있다는 점이 문제다. 만약 이후에 주차단속에 대한 이미지 개선이나 환기가 있었다면 편견에 대한 훌륭한 비판 사례가 될 테지만, 디즈니는 그렇게까지 숙고하지 않는다. 주디는 주차단속원에서 '벗어나' 주토피아의 악의 축을 때려잡는 영웅으로 성공한다. 이것이 주토피아, 더 나아가서 디즈니의 한계다. 차별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평면적이라 일견 굉장히 그럴싸해보이는데 뜯어보면 여전히 모순투성이. 차별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와중에도 무의식중에 자신들의 차별의식을 담아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차별 나빠! 역차별도 나빠! 악당 하나만 집어넣으면 모두 해피엔딩! 종족 차별이 발생하게 된 사회구조에 대한 논의는 없고 악당인 개인 하나만 때려잡고 모두의 유토피아로 돌아온 결말이 허무할 정도다. 진짜 문제가 되는 차별은 개개인의 차별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범주를 나눠서 편견을 가지는 차별이다. 그래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차별을 사회 문제화하는 거고. 조금만 더 나아갔으면 정말 괜찮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거 같았는데, 역시 디즈니의 한계다. 그래도 겨울왕국보단 낫지만. 어린이 대상용 애니라 어쩔 수 없다기엔 어린이만을 겨냥했다기에도, 어른들을 겨냥했다기에도 참 애매한 내용이다.


 참고로 3D로 봤는데 3D 효과는 그리 큰 편은 아니라 2D로 봐도 무방할 듯 하고, 더빙도 꽤나 괜찮은 편.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다면 영상도 예쁘다. 다만 영화의 전개가 마음 편히 아무 생각이 안 들게 하진 않는다는 것.